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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저는 과연 일본에 득일까?

by 니모하 2025. 4. 26.

오랫동안 엔화 약세는 일본 경제 회복의 키워드로 여겨져 왔다.
엔저 = 수출 증가 = 기업 이익 확대 = 경제 회복이라는 등식은 마치 불변의 진리처럼 반복돼왔다. 그러나 지금의 일본은 과거와 다르다. 저출산·고령화, 글로벌 공급망 변화, 내수 정체, 에너지 의존도 상승 속에서, 엔저의 혜택보다 부작용이 더 크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엔저를 둘러싼 경제적 착시와 구조적 문제를 분석해본다.

엔저는 과연 일본에 득일까?
엔저(円安)는 과연 일본에 득일까?



수출 대기업만 웃는다? 엔저 효과의 집중 편중

전통적으로 엔저는 일본의 제조업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대표적인 예가 도요타, 혼다, 소니 같은 글로벌 제조 대기업들이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이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원화 환산 시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효과는 일부 수출 대기업에만 집중된다.

 

수출 비중 높은 제조업 대기업만 혜택
일본 수출의 70% 이상은 대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들은 이미 생산기지를 해외에 이전한 경우도 많아, 현지통화로 수익과 비용을 처리하는 구조.

결과적으로 엔저가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희석되고 있다.

 

중소기업은 오히려 피해
일본의 중소 제조업체나 서비스업체는 수입 의존도가 높은 원자재, 부품, 에너지 가격 상승에 직격탄을 맞는다.

해외에서 수입하는 원자재 비용이 급등해 마진이 줄고, 가격을 전가할 수도 없는 구조다.

특히 식품, 외식, 의류, 유통 업계는 원가 상승 + 소비 위축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엔저는 일부 기업의 수익을 올려줄 수는 있어도, 국민경제 전체에 이득을 주는 구조는 아니다.

 

수입물가 급등과 실질소득 하락

2022년 이후 급격한 엔저 흐름 속에서 일본 국민들이 가장 크게 체감한 것은 생활비 상승이었다. 에너지, 식료품, 일상용품 대부분이 수입에 의존하는 일본에서, 환율은 곧 물가와 직결된다.

 

수입 인플레이션 현실화
원유, 천연가스, 밀가루, 커피, 육류 등 대부분의 필수재는 달러로 수입되는데,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자동적으로 물가가 오른다.

특히 에너지 가격 급등은 전기료·가스요금 폭등으로 이어졌고, 이는 자영업자들과 일반 가계의 지출 부담을 급격히 늘렸다.

 

임금은 오르지 않는데 물가는 오른다
일본은 오랫동안 임금 정체와 저물가 디플레이션에 익숙했던 경제다.

급격한 물가 상승은 실제 소득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오며, 내수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이어진다.

 

소비자는 절약 모드로 전환
소비 트렌드는 할인 브랜드 선호, 중고거래 활성화, 외식 기피, 기본재 위주 구매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1인 가구와 고령층은 생활 필수비 외에는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기업은 환율로 웃고, 국민은 물가로 운다. 이것이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내수경제의 침묵의 붕괴와 장기적 성장잠재력의 악화

지금의 엔저는 일본 경제를 단기적으로 수출 중심 구조에 의존하도록 만들고, 그만큼 내수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일본 경제는 이제 수출보다 내수 비중이 더 큰 경제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고령화 사회, 소비의 감소는 불가피
일본의 고령화 비율은 전 세계 최고 수준.

고령층은 소비 성향이 낮고, 건강·주거 등 특정 분야 소비에만 집중됨.

젊은 세대는 소득 불안정, 취업난, 미래 불안으로 소비를 꺼리는 경향이 짙다.

 

부동산·서비스·자영업 위축
엔저와 인플레이션은 자영업자들의 운영 비용 증가로 직결된다.

일본의 내수 산업(예: 요식업, 소매업, 지역 관광)은 이미 코로나로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엔저발 비용 증가로 더 깊은 침체에 빠져 있다.

 

장기적 성장잠재력 감소
지속적인 내수 위축은 기업의 국내 투자 유인 감소로 이어진다.

그 결과, 고용 창출력 약화, 세수 감소, 복지 부담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일본 경제는 이제 ‘외부 수요’ 없이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에 갇혀버렸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엔저는 과거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이끈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일본은 노동력 구조, 산업 비중, 소비 패턴까지 전혀 다른 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 수출 대기업 몇 곳의 실적 상승만으로는 국민 삶의 질, 내수 생태계, 경제 전체의 활력을 회복할 수 없다.

이제는 일본 정부와 기업 모두가 환율에 기대는 경기 부양이라는 관성을 버리고,

생산성 향상, 내수시장 혁신, 인구 전략, 디지털 전환이라는 실질적 구조 개혁에 나설 필요가 있다.

 

엔저는 약이 아니라 진통제에 불과하다. 병 자체를 고치지 않으면, 일본 경제는 회복할 수 없다.